끄적거림

201031

Yarnspinner 2020. 10. 31. 01:14
728x90

연애가 끝이나면 두번은 없었다. 매달리지 않았고 연락이 오면 매정하게 쳐냈다. 다시 받아준건 데이트폭력으로 무서워서 어쩔수 없이 받아줬던 사람과 대건이가 유일했다.
대건이는 내 기상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고 모닝콜을 하고 다시 자곤 했는데, 연애가 끝나도 그 전화는 항상 왔었다.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전화가 왔고, 내가 “여보세요”하고 받으면 끊었다.
그렇게 한달정도 지날때쯤 내가 공황인지 뭔지 그 비슷한 무엇으로 공포감이 밀려와 숨이 안쉬어지는 상태로 대건이 한테 전화를 해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대건이는 침착하게 뭐하고 있었냐 물었다.
나는 숨이 넘어가면서 엄마랑 무한도전 본방을 보고있었고 눈물이 나고 불안해서 방에 숨어있다 했다. 대건이는 놀라는 기색 없이 점심은 무얼 먹었냐, 좋아하는 티비프로그램은 봤냐는 소소한 질문으로 나를 진정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도 친구도 아닌 사이로 수개월을 지냈다. 연인이 아니기에 전화해서 오늘은 누구랑 뭘하냐 묻지 못했다. 그걸 네가 왜 묻냐고 선이 그어질까 무서웠다. 하루에 서너번씩 전화통화를 하고 안부를 묻고 애매한 애정표현을 했다. 일주일에 두세번 만났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건 많지 않았다. 귀찮은 존재가 되고싶지 않아서였지만 그게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는 독이 됐다. 힘들어지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대건이의 썅년이 되기를 자처했다.

이번주엔 영화를 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지키질 못 했다. 다음주엔 법원을 가고 전회사 거래처직원을 만난다. 소소한 일상이 반복된다. 그날처럼 심한 공포감은 다행히 도 없었다.
오늘은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대건이 생각이 났다. 결국 헤프닝이었지만.



오늘 산책길이 참 예뻐서 걷다보니 2시간을 넘겼다.

'끄적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06  (0) 2020.11.06
201104  (0) 2020.11.04
201029  (0) 2020.10.29
201026  (0) 2020.10.26
201019  (0) 2020.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