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거림 96

201210

면접을 봤다. 집에서 도보20분거리의 회사다. 거의 1시간을 준비하고 20분의 면접동안 15분을 결혼이야기로 채웠다. 왜 아직 결혼을 안 했냐 결혼생각이 없냐 왜냐 부모님은 반대 안 하시냐 불효라고 생각한적은 없냐 등등등. 한 소리 해주고 나올 걸 후회했다. 기혼자였으면 또 애는 있냐, 왜 없냐 따졌을거다. 있으면? 애는 누가 케어하냐 엄마가 필요할 나이다 애가 아프면 어쩔거냐 애는 엄마가 필요하다.. 뻔한 스토리라인이다. 왕복 이동시간까지 따지면 2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쓰레기통에 갖다 쳐넣은 하루다. 그들은 내 이력에 관심이 없다. 어째서 이 일을 하게됐는지, 거기서 쌓은 내 캐리어나 인맥 등등은 어떻게 되는지. 어디까지 업무를 혼자 캐리가능한지 등등. 다음주는 제주에 내려가려 한다. 엄마의 눈치를 살..

끄적거림 2020.12.10

201206

가끔 맘에도 없으면서 푹 빠진척, 매달리는 척을 한다. 며칠전에는 병원에 다녀왔고, 임신을 권유받았다. 웃기게도 그 말 한마디에 성욕이 되살아났다. 번거로운 욕구가 하나 추가되면서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다짐을 한 순간 건강한 기운이 발끝부터 감돌아 당장 스쿼트를 시작했고 오늘은 20층 계단을 올랐다. 준철오빠한테 떡볶이를 사주지 못한게 마음에 걸린다. 나의 모성애를 자극한 남자는 처음인것같다. 엄마가 이 얘길 들으면 코웃음 치겠지만.. 가진게 없고, 난 여자답지 않다. 없는 마음을 있다고 하지않고 있는 마음은 얼굴에 다 드러낸다. 얼굴의 기운이 좋아진걸 느낀다. 며칠뒤 생리가 시작되면 나는 또 세상 가장 우울한 아이가 되겠지만.

끄적거림 2020.12.06

201201

이번여행은 수연이가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서 근숙이와 있게 되면서 제주에서의 일상이 아닌 여행을 하게 됐다. 절물오름, 곶자왈, 상효원, 동백동산, 지미봉을 오르면서 떨어진 체력을 실감하게 됐다. 집으로 돌아가면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말뿐이라는걸 거의 확신한다. 아르떼, 디앤디, 김영갑, 새탕라움을 보고 활력도 찾았다. 역시 생각하기전에 몸부터 움직여야 한다. 귀는 기울이고 입은 무겁게, 낯빛을 조심해야 한다. 주인없는 달빛빌리지에서 편하게 쉰다. 나이 들어가며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준다는게 얼마나 어려운것인지를 배운다. 내게 몇 안되는 진심으로 행복을 바라는 사람중 하나가 수연이다. 언제 또 제주에 오게 될까. 당장 다음주일수도, 내년 이맘때일수도 있겠다. 내일은 집..

끄적거림 2020.12.01

201130

나는 혼자 있는 법을 모른다. 이건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 할 거다. 싫은건 얼굴로 티를 내야하고, 좋은건 또 온몸으로 표현한다. 받아들여지면 좋지만, 반대의 경우 내 마음을 난도질내버린다. 곶자왈의 나무들은 살기위해 돌에 뿌리를 내린다는데 나는 살고싶은 의지가 있기나 한건지 모르겠다. 장난기가 사라졌다. 또 잘 맞는 누군가를 만나면 온몸으로 개그감을 뿜어낼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누구를 만나도 진지하고 진지하다. 나는 내 장난기를 사랑한다.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억지웃음을 내었더니 웃음소리가 경박하다. 소리를 내는 것에 조심해본다. 수요일에는 육지로 올라갈거다. 엄마도 도와드리고 진료도 받아야한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는건 무섭지않다. 그것보다 무서운게 많아졌다. 누군가와의 영원한 이별, 친구들과의..

끄적거림 2020.11.30

201113

오빠는 내게 애인같은 존재였다. 20대에 한참 술독에 빠져살았던 적이 있었다. 술을 마시고 있으면 오빠에게 문자가 왔다. 어디야? 그러면 어김없이 12시즈음 전화가 와서 나를 데리러 왔다. 나의 첫 부산여행도 오빠였고, 첫 클럽도 오빠, 서울 곳곳을 함께 여행했다. 내 첫사랑 인종이는 그런 오빠를 좋아하지 않았다. 인종이는 매번 내 술자리가 끝날무렵 와서는 내 친구들한테 둘러쌓여 잔소리를 듣고 나를 집에 바래다주곤 했다. 일과의 마지막이 내가 되는게 좋다했다. 근데 그걸 오빠한테 뺏겼던거다. 인종이랑은 일주일에 두세번 만나고 매일 통화하고, 인종이가 일본에 놀러갔을때에는 국제전화로 안부도 물을 정도의 사이 였지만 사귀지 않았다. 인종이가 내게 약속한건, ‘결혼을 한다면 너와 하겠다’와 ‘너를 만나는 동안..

끄적거림 2020.11.13

201106

처음 만난 남자와 떡볶이를 먹었다. 남자는 몇개월 전 엄마가 식사를 못하셔서 병원을 전전하다 우울증진단을 받고 정신병동에 입원하셨고 퇴원검사 중에 뇌에 종양이 있다는걸 알게 되어 수술을 하셨다 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떨리더니 침을 여러번 삼키고 진정하는 듯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남자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기댈곳이 없다했다. 남자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더니 머리를 움켜쥐었다. 손에 들려있던 포크를 내려주었다. 괜찮을거라 했고, 미리 알았으니 운이 좋은거라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정수리 어디쯤부터 눈썹언저리까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영화를 보고 떡볶이를 먹고 일년은 족히 쓸 수 있는 마스크를 선물받았다. 두팔을 벌려 아기처럼 콩콩뛰며 빨리 들어가라고 인사하는 걸 안아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정말..

끄적거림 2020.11.06

201104

며칠전 망상을 하다가 너무 끔찍한 상상을 해버렸다. 입에 담기조차 싫은 그런 내용이었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 한동안 내 자신이 무서웠다. 선생님께는 애둘러 물어봤다가 속마음을 들킬까 금방 그만두었다. SNS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각자의 개성이라지만, 해시태그 붙이는 공간에 전시하듯 써내놓은 애도는 좀 그만 보고싶다. 잘 살아내야겠다. 이상하게 삶의 의지가 생기는 날이었다.

끄적거림 2020.11.04

201031

연애가 끝이나면 두번은 없었다. 매달리지 않았고 연락이 오면 매정하게 쳐냈다. 다시 받아준건 데이트폭력으로 무서워서 어쩔수 없이 받아줬던 사람과 대건이가 유일했다. 대건이는 내 기상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고 모닝콜을 하고 다시 자곤 했는데, 연애가 끝나도 그 전화는 항상 왔었다.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전화가 왔고, 내가 “여보세요”하고 받으면 끊었다. 그렇게 한달정도 지날때쯤 내가 공황인지 뭔지 그 비슷한 무엇으로 공포감이 밀려와 숨이 안쉬어지는 상태로 대건이 한테 전화를 해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대건이는 침착하게 뭐하고 있었냐 물었다. 나는 숨이 넘어가면서 엄마랑 무한도전 본방을 보고있었고 눈물이 나고 불안해서 방에 숨어있다 했다. 대건이는 놀라는 기색 없이 점심은 무얼 먹었냐, 좋아하는 티비프로그램은 봤냐..

끄적거림 2020.10.31

201029

사실 나는 내가 어떤걸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싫어하는게 뭔지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누구인지 나는 알지 못 한다. 삼십칠년이란 시간을 가장 가까이 보내놓고는 나는 나를 모른다. 단순히 연애상담이었다. 시작은 쉬운데 유지가 어려웠다. 문제가 생기면 끝이 보였고 싸움이 커지기 전에 일찌감치 그만뒀다. 회피형에다가 싸우거나 이별하는걸 극도로 거부한다고 했다. 슬픔에 직면해본 기억이 많지않아 경험하지 못한데서 오는 불안감이라고 한다. 혹은 반복된 싸움이나 이별로 인한 감정이거나. 싸우는게 싫어서, 이별하는게 싫어서 감정을 숨기는게 발달했단다. 싸우고 이별하는건 흔히 있는 일이라는걸 받아들이라고 한다. 극복하려면 끝까지 싸우는 경험을 하던가, 포기하고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

끄적거림 2020.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