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거림 96

201026

정민씨가 틴더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주도에는 핑크뮬리와 억새가 피었다고 한다. 소식을 듣다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수연이를 알고지낸 뒤부터 제주를 혼자 여행간적이 없다는게 생각났다. 혼자 가긴 했지만 항상 수연이와 있었던거다. 20대때에는 부산이고 통영이고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언제부턴가 혼자 무언가를 하는게 힘들어졌다. 어릴땐 뭐하러 그렇게 혼자 다녔는지.. 뒤늦은 사춘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제주도 생각을 오랜만에 길게 했다. 적당한 숙소를 찾아 한달살이를 계획해본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나는 모든것를 잊었다. 괜찮다.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가 좀 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어플같은걸 깔아서 친구를 만나보라 한다. 당장 오래 알고지낸 친구도 못 챙기는데 말이다. 알람을 죽여놓은, 사실상..

끄적거림 2020.10.26

201019

방어기제가 강하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 엄마와의 과잉애착. 감정표현결여. 자기애부족. 회피성. 침착함.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고 바로 짜증내고 화내볼것. 일기 계속 써볼것. 헤어지는 시간 늘려보기. 반항해보기. 차를 타고 돌아오는동안 빨리 정리해서 쓰고싶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부터 몇시간동안 글로 풀어쓰는게 불가능해서 나열한다. 이렇게라도 쓰지않으면 안될것같아 기록한다.

끄적거림 2020.10.19

201016

날이 제법 차졌다. 싱크대 구석이 넣어두었던 찻잎을 꺼냈다. 한번 우리기 시작하면 머그컵으로 두번은 마신다. 다도같은건 모른다. 커피포트에 물을 가득 끓여 머그컵에 찰랑거리게 따른다. 우리집은 좀 많이 차게 있는 편이라, 찻김이 공기의 흐름을 바꾸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건조하다. 계절의 건조함에 마음의 건조함까지 더해졌다. 일상은 딱딱히 굳었다. 그나마 근처에 있는 조카들 덕에 간간히 웃으며 지낸다. 왜 그런지 딱딱해졌다. 잘 지내냐는 물음에도 눈물이 그렁거려 누굴 만나는 것 조차 어렵다. 당장 이번 일요일에 있는 약속도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싶다만 딱히 둘러댈 말이 없다. 소속감이 나를 지탱해주는데, 나는 더이상 소속이 없다. 하필 또 이럴때 무직상태다. 엎친데 덮쳤다. ..

끄적거림 2020.10.16

201009

자존감은 없고 자존심은 머리꼭대기인 관종. 심리상담을 받는다. 표현방법이 서툴러 화내는것부터 해보라고 과제를 받았다. 스물다섯인가.. 지은이가 우리동네에서 회사친구랑 둘이 술을 마시고 있다고 나를 불렀다. 미리 계획된 자리가 아니면 누가 술마신다 오라하면 무조건 거절하는데, 그날은 지은이가 너무 조르는 터라 억지로 끌려나갔다. 도착해서 술 몇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지은이 회사사람들이 몰려들어왔다. 이야기인즉, 지은이가 여기저기다 전화를 돌렸고 아무도 확답하지않은 상태에서 내가 나간것. 어쩌다니 회식자리에 끼인것같은 요상한 그림이 됐다. 나는 웃으면서 재밌게 놀라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자리가 너무 불쾌하고 어이없었지만 아무말도 하지않았던 내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런기분이 처음이었다. 내 자신에게 미안..

끄적거림 2020.10.09

201005

우린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내 지나간 모든 인간관계를 통틀어 다섯손가락이 꼽힐 정도로 잘 맞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마흔을 바라보는, 혹은 마흔이 된. 아무튼 우리또래의 모두가 그렇듯 상처 하나둘씩은 다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 겁이 나도 같이 이고 지고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모두가 아니라고 그랬고, 너도 아니라고 했지만 왜 인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안고있는 상처때문에 잠시 나를 밀어내는 거라고 그렇게 포장했다. 더 열심히 마음을 내줬다. 그건 확실히 내 속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해야만 내 속도의 절반이라도 따라와줄 것 같았다. 그렇게 끝이 났다. 사람은 돌아서는 뒷모습에 민낯을 보인다. 내가 조금만 덜 진심이었어도 우리는 계속 친구일 수..

끄적거림 2020.10.05

200926

내일당장 죽을 수도 있는데 100세를 대비하며 살아야한다는 글을 읽었다. 끔찍하다. 왜그러는지는 몰라도 엄마가 며칠전부터 이상해졌다. 마치 어딘가로 사라져버릴것만 같다. 힘이 쭉 풀린 것 같다 했다. 그렇게 몸에 이상이 생긴지 이주정도 지난것 같다. 큰 병은 아닐까 모르겠다. 추석이 지나면 엄마랑 병원에 다녀야겠다. 물론 극구 사양하시겠지만. 청주에 어르신이 선얘길 꺼낸 후로 엄마는 나랑 이야기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선 얘기를 꺼내신다. 추석이 지나면 바로 날을 잡을 기세다. 엄마 떠나면 아빠랑 어찌 살거냐 한다. 나는 그냥 이대로가 좋다한다. 아무렴 어떠냐한다. 엄마는 빨리 너도 보금자리 찾으라 한다. 올 해 어버이날은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싶다 하시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불효녀다. ..

끄적거림 2020.09.26

200921

#.일이 있어 PC방에 왔다.수연이 총쏘고 싶다해서 따라 간것을 빼면 한 10년넘게 오지 않았던 곳이다.휴대폰 요 요망한것에 이것저것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PC가 없이도 생활을 편히 한다.오는 연락에, 재미있는것 투성이인 휴대폰때문에 회사다니면서도 없던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길것같다. #.서울에서 지금사는 인천으로 이사오던 날이었다.다른 식구들은 이사가는 집으로 떠나고,나는 서울에 남아서 이사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인천집은 낡아서 이것저것 손볼 것이 투성이었다.문지방을 제거하고 도배와 장판을 해야했다.인천으로 넘어갈 시간이면 도배와 장판을 하고 있거나, 마무리 작업을 해야했는데무엇때문인지 작업을 중단했다는것이다.아빠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장판을 걷어보니 바닥이 깨져있었는데 그걸 마무리 해야된다고 모든 작업..

끄적거림 2020.09.21

200918

#. 미뤄왔던 것들을 정리중이다. 흩어져있던 돈들을 하나로 몰아넣고 usb에 꼼꼼히 기록한다. 쌓아뒀던 병원영수증도 정리해서 보험사에 청구했다. 당근마켓에 이것저것 올려둔것들은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 했다. #. 가끔 끔찍한 생각을 한다. 내가 갑자기 죽어버려서 우리가족 중 누군가가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이들에게 연락한다면 부고를 받고도 망설임없이 올 사람의 연락처만 저장하자. 근데 그게 쉽지않은것이다. 가끔 전화오는 헤어진 남자친구나, 살아있으면 절대 연락하지 않겠지만 마음 한켠에 짠하게 자리잡고있는 사람이나, 한때의 짝사랑이나. 20대에는 맺고끊음이 칼같고 아쉬울거 없는 성격이라서 전화번호 정리가 너무 쉬웠다. 지금도 저장해놓은 연락처가 회사사람들을 빼면 100명도 채 안되지만. #. 정은언니가..

끄적거림 2020.09.18

200910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잠시 접어둔 공예를 다시 시작하고, 뮤지컬을 보고, 매번 말만이지만 운동도 하고.하필 이런 시기에 코로나 이 개같은 바이러스는 없어지질 않는다. 지웅오빠 가게에도 가고싶다.유미네 집에도 가야한다.정은언니한테도 가야하는데 올해는 비행기가 없단다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친구들에게 생존신고를 했다.다행히 다들 반기는 눈치다.나머지 친구들은 사실, 굳이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연락이 끊길 친구들 이었다. 이 지랄같은 나를 여태 버텨준 고마운 사람들 아닌가.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친구들에게 잘 해주어야겠다.코로나시국에다 다들 가정이 있어 잘 만나질 못하니 어떻게 잘 해줘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예전에는 어땠지? 내가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았을 때 말야.그 때는 뭐 만날 술이나 퍼먹고 지..

끄적거림 2020.09.10